A Cup of City
이름은 정말 중요합니다. 제 이름은 이재동인데요, 어린 시절엔 '김제동'이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그냥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요. 그 덕분에 친구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제게 말 걸기가 편하잖아요. 이야기가 삼천포로 갔는데, 그만큼 이름이 주는 힘은 강력합니다. 똑같은 매장이더라도 상호가 재밌으면 한 번 더 고개를 돌리게 되잖아요.
커퍼시티가 제겐 그랬습니다. 커핑하는 도시? 커퍼들의 도시? 왠지 뜻이 궁금해지면서 입에 달라붙는다는 말이죠. 또 유튜브 '삥타이거' 보니까 매장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망원이라는 동네에 어울리는 톤이면서도 어딘가 외국스러운 동선이 묘했습니다. 이 사장님, 대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파헤치고 싶습니다. 궁금증 도지면 못 참는 성격이라서요, 외근일지 두 번째 매장으로 정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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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이라 3배 줌 눌러서 망원 렌즈로 찍었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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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근 일 지
소속 카페 도안
직책 에디터
행선지 커퍼시티
이동수단 지하철(수인분당->1호선->2호선->6호선. 아이고 멀다)
날짜 햇살 따사로운 2023년 4월
수행업무 커퍼시티의 모든 것 파헤치기
업무결과 사장님께 단호박 파이 얻어먹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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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메뉴판입니다. 영수증으로 되어있는 게 특이합니다. 카페 운영하며 은근 골머리 앓게 하는 게 바로 메뉴판이에요. 싱글 오리진을 많이 다루는 매장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좋은 종이로 디자인 예쁘게 해서 인쇄해도 라인업이 바뀌면 다시 만들어야 하거든요. 커퍼시티의 메뉴판을 보며 참 아이디어 좋다고 느꼈습니다. 빌지 특유의 타이포에서 오는 감성과 간단히 만들 수 있다는 실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거든요. |
메뉴판 뒤편에는 많은 커피 봉투들이 있습니다. 더 반, 떼르 드 카페, 에이커피, 센터커피 등이 걸려 있고 사진에는 없지만 원두를 따로 담아두는 상자도 있었습니다. 커퍼시티라는 이름이 괜히 정한게 아닌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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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뻗은 일자 바도 재밌습니다. 요새 들어 한두 군데씩 보이는 이 구조는 전형적인 호주식 구조거든요. 스몰톡이 일상인 그들의 커피 문화가 동선에도 그대로 묻어나옵니다. 손님을 케어하기에 좋고, 손님들끼리도 인사하며 대화 나누기 좋습니다. 제가 만약 독립해 매장을 차린다면 이런 시스템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실제로 보니 기분이 묘합니다. 상상 속에만 있던 게 이미지화가 된 느낌이랄까요. |
방문했던 날은 유난히 따뜻했던 4월 12일이었습니다. 어지간하면 따뜻한 커피를 마시려고 했는데요, 망원역에서 걸어오다 보니 땀이 좀 나더라구요. '에이커피'에서 볶은 케냐를 아이스로 주문했습니다. 윙 소리와 함께 저만 없는 EK43이 돌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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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은 제가 당연히 따뜻한 걸 주문할 줄 아셨답니다. 분쇄도를 따뜻한 커피에 맞추어 했었어서 맛이 있을 지 없을 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제가 봤을 땐 겸손입니다. 경쾌하게 프루티한 뉘앙스가 좋습니다. 케냐를 아이스로 내렸을 때 기대하는 바로 그 맛입니다.
사실 제가 방문한 날은 커퍼시티의 정기휴무일입니다. 외근일지가 인터뷰가 있는 콘텐츠인 만큼 미리 방문일자를 맞춰서 가야 하는데요, 소중한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서 '오늘 영업하시냐'를 여쭤봅니다. 제가 들어와 있어 오픈한 줄 아는 모양입니다. 죄송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단골 분들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로컬라이징이 참 잘 됐다 싶었죠. 부러웠습니다. 매장의 많은 것들이 궁금해집니다. 본격 인터뷰를 땄습니다. 사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거의 1시간 반을 떠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말씀을 워낙 잘 하셔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번 레터의 분량이 많은 이유입니다. 너른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리며 그날 나눴던 이야기를 지면으로 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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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커퍼시티를 2년째 운영하고 있는 변상헌이라고 합니다.
커피를 쭉 하셨던 건가요 아니에요. 20대에는 학교와 회사를 병행하며 직장 생활을 오래 했는데요, 20대 끝나기 전에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었어요. 그렇게 퇴사를 했죠. 가능하면 영어권으로 가고 싶었어요. 가서 영어라도 배우게요. 찾다 보니 워홀 비자가 가장 쉽게 나오는 국가가 호주였어요. 일단 가보자는 마인드였어요. 가서 몇 달을 놀다 보니까 퇴직금을 다 썼어요. 제가 있던 곳은 멜버른인데 프랜차이즈는 거의 없고 로컬 카페들이 마치 편의점처럼 잔뜩 있었어요. 분명 어딘가에서는 구인을 할 것 같더라고요. 호주에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어요. 검색해보면 카페 면접 갈 때 준비할 것들도 나와 있어요. 참고하면서 돌아다니면서 면접을 봤죠. 카페는 파트타이머를 많이 구하니까 면접 다니며 한 달을 보냈어요. 면접을 가면 트라이얼이라는 걸 하는데, 매장에서 실제로 머신을 다뤄보며 테스트하는 거예요. 커피에 관심은 있었지만 일은 해본 적이 없으니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요. 오히려 트라이얼을 하면서 머신 쓰는 법을 조금씩 익혔죠. 그러다가 엄청 작은 가게에서 연락이 왔어요. 홍콩 바리스타가 있었는데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열심히만 해준다면 일 가르쳐주겠다고요. 그게 첫 커피 직장이었어요.
그렇다면 호주에서 바리스타 하다가 이렇게 넘어와서 바로 카페를 차린 건가요?
호주에서는 온전히 스페셜티만 하다 왔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커피 문화라는 걸 누려본 적이 없어요. 스타벅스나 파스쿠찌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만 다녔어요. 한국의 커피 시장 구조는 흐름을 아예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일을 하기로 했어요. 당시 입사한 곳이 매장 옆에 있는 딥블루레이크에요. 제 이력이 약간 재밌으셨나 봐요.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없는데 호주에서는 커피를 하다 왔다고 하니까요.
두 나라에서 일을 하셨잖아요. 커피 문화가 다른 점도 있었나요? 두 개로 나눠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식음료만 보면 한국이 훨씬 발달해 있어요. 브런치나 디저트 카페를 예로 들면 호주는 원재료 자체가 워낙 싸고 많고 품질이 좋아요. 그러니까 그냥 신선한 재료만 내놓아도 충분해요. 샐러드가 메인 메뉴가 될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샐러드 하면 사이드 디쉬잖아요. 호주만큼 양을 내어주려면 가격이 엄청 올라가거든요. 그 대신 한국은 공임으로 살려내는 느낌입니다. 선택지가 적은 만큼 더 까다롭게 조리하죠. 고객과의 접점 면에서는 호주가 더 많이 발달해 있는 느낌이에요. 한국에서는 카페에서 음료 주문을 받고 내어주면 끝이죠. 호주는 아니에요. 그 사람이 매장에 머무는 동안은 계속 신경 써 주는 거에요. 부족한 것은 없는지, 커피는 어떤지 소통하죠.
근무와 창업은 완전 다른 일이잖아요. 창업까지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창업을 꿈꾸며 일하는 게 바리스타로서 당연한 수순이긴 한데 그게 언제일 것이라고는 정하지 않았어요. 일하면서 서울 카페들을 꾸준히 돌아다녔어요. 손님들과 계속 소통하고 케어해주며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운 서비스를 하는 곳은 없는 것 같았죠. 그렇다면 없을 때 하자였어요. 남들이 안 하는 건 이유가 있다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가능한 서비스였어요. 만약 불가능했다면 그런 매장이 있다가 사라진 사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거든요. ‘그게 힘들어서 안 했나? 그렇다면 내가 해보자’라는 마음이 있었죠. 관절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하자는 마음도 있었어요
도전 정신이 좀 있으신 것 같아요.
그렇진 않아요. 보통 사람이 본인이 원래 잘하던 방식대로 일을 이끌고 가려고 하잖아요. 제가 한국에 들어올 당시에 이런 동선과 구조, 시스템을 구현해내는 매장들이 몇 군데 있었어요. 듁스, 어나더룸, 에이커피 같은 곳이요. 그 대표님들이 저와 같은 시기에 멜버른에 있었어요. 다 동선이 똑같아요. 일자로 뻗은 바에 머신이 있고, 끝 부분은 브루잉 바에요. 그 바는 손님들과 공유하죠. 그 대표님들이 먼저 구현을 해둔 걸 보니 안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대표님들과 꾸준히 연락을 이어나가다 보니 저도 다른 동네에서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죠. 결단력이라기보다는 ‘망하면 망하는 거지’라는 마인드였어요. 일단 질러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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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퍼시티라는 상호가 재밌습니다. 뜻이 뭔가요
‘원래 있을 법한 단어를 만들자’가 작명할 때 우선시하는 부분이에요. 입에 붙어야 하지만 또 흔한 이름이면 안 돼요. 검색했을 때 업체가 나와야 해요. 예를 들어서 상호가 ‘카페 모카’면 입에는 붙지만 검색이 안 되죠. 그런데 영어권 친구들이 말장난을 좋아하는데, 그게 재미있었어요. 제가 차릴 매장의 상호를 고민할 때쯤 컵 용량 사이즈도 동시에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흔히 케파, 카파라고 말하는 Capacity가 있잖아요. 마침 제가 호주에서 많이 쓰던 단어가 커퍼Cuppa가 있거든요. 커피 한 잔 하자 할 때 “You wanna cuppa?’라고 물어봐요. 카파시티라는 익숙한 단어도 있고, 싱글 오리진 커피를 많이 소개하는 매장처럼 보이게 ‘A cup of city’를 줄인 느낌도 담은 지금의 커퍼시티Cuppacity가 만들어졌어요. 네 글자인 것도 좋았고, 조형적으로도 알파벳 a를 기준으로 나눠지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지금 매장 계약하기 전에 다른 자리에서 해보려고 지은 이름인데 당시 그 자리는 도시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더 잘 어울렸어요. 아쉽게 계약 파기가 되면서 여기로 왔는데 이 매장과 어울릴까 고민할 새도 없이 이제 이미 상호 신고가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냥 하자 했는데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어요.
커퍼시티 운영하면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라는 철학이 있다면요
이 일에 책임감 있게 임한다는 걸 보여주는 게 가장 우선이에요. 커피를 서빙하기 전에 맛을 보는데요, 그 때문에 커피 나오는 게 늦어진다고 컴플레인도 많이 들어와요. 사실 빨리 내보내려고 하면 모든 커피 레시피를 동일하게 사용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따뜻한/차가운 음료, 로스터리별로 레시피를 다르게 잡고 있어요. 받은 돈만큼 맛있는 커피를 드리고 싶다는 책임 의식이 있어요. ‘이 집이 커피를 열심히 한다’ ‘믿을 만한 커피집이다’라는 인식을 드리고 싶죠.
커핑 세션을 진행하시는 것도 그 일환일까요 그거야말로 제가 호주에서 꼭 가져오고 싶은 문화 중 하나였어요. Aunty Pegs이 매주 화요일에 캐주얼 커핑을 해요. 아무런 제한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커핑이에요. 그러면 많은 분들이 무슨 전문성과 지식을 얻어갈 수 있냐고 되묻죠. 그런데 캐주얼 커핑은 커뮤니티나 소셜 클럽의 역할이 훨씬 커요. 전문적인 지식을 원하는 분들께는 그런 환경이 될 수도 있고요. ‘커피 좋아하세요? 그럼 우리 다 같이 모여서 커피 한 잔 마시러 갈래요?’라는 문화는 요즘 들어서야 생긴 거지, 제가 한국 왔던 2018~2019년에는 그런 문화가 없었어요. DC나 클리앙 같은 커뮤니티에서 대화하시는 분들은 많았지만 실제로 모여 친목 도모 겸 해서 커피 마시는 모임은 많이 없었어요. 저희가 장소와 빌미를 제공해드리면 동네 분들이나 커피 좋아하시는 분들이 커피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정보 교류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희도 뭔가 배울 수 있으니 꼭 해보고 싶었던 콘텐츠였죠. 최근에 도쿄 커핑 했을 때 저희 밤 11시에 집에 갔어요. 6시 반에 시작해서 9시 반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끝나도 사람들이 집에 안 가시더라고요. ‘도쿄 어디 다녀오셨냐’부터 시작해서 가져온 커피를 서로 내려마시며 재미있는 시간 보내시는 거 보니 참 보람찼죠.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바리스타 입장에서 보면 놀이 문화를 바꾸고 싶었고,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고객이 유입되어야 유지가 되니까요. 양쪽 모두에서 윈윈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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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에 터를 잡은 것도 그것 때문인가요
사실 마포 쪽은 아예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우스갯소리로 딥블루레이크더러 친정집이라고 하는데, 이 근처잖아요. 여기는 커피를 잘하는 곳이 너무 많아요. 성수부터 시작을 했는데 모르는 동네보단 아는 동네에서 고생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하다 보니 걸어서 사당 갔다가 종로/을지로 갔다가 증산 갔다가 연희 연남 돌아 여기까지 왔죠. 제 기준은 공간이 별로면 목이 좋아야 하고, 목이 별로면 해가 많이 들어오는 공간을 찾는 거였어요. 지금 저희 매장이 원래 상가 3개를 합친 식당 하나가 들어와 있던 곳인데요, 이걸 다 터버리면 개방감을 맛볼 수 있겠더라고요. 당시에는 체크만 해 뒀었는데 여기가 공실이 되고, 저도 계속 찾느라 지치니 여기로 했습니다. 전기, 수도, 가스 전부 다 다시 공사해서 카페 하나로 탈바꿈시켰죠. 그때만 해도 사실 망리단길 제외하고는 카페가 없었거든요. 그나마 604 정도? 해가 떠 있을 때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를 전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퇴근 후에 앉아서 커피를 즐기는 카페 문화가 대다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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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유리에 영수증으로 편지를 쓰는 건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한국은 모든 카페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하고 공지하거든요. 오프라인으로 워크인 고객님들은 도대체 어디서 정보를 얻을까라는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손님분들도 가게 앞에서 인스타그램을 켜더라구요. 너무 정이 없는 사회 아닌가 싶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프릳츠 김병기 대표님처럼 손으로 써두고 싶었는데 제가 원체 악필이거든요. 그런데 호주에서는 영수증 도켓이라는 걸 써요. 워낙 커피 커스텀 주문이 많다 보니 영수증에 메모나 노트를 적을 수 있는 기능입니다. 그때 기억이 나서 포스기 영수증으로 뽑기 시작했습니다. 가오픈 기간 동안 사람들한테 가게 이름, 업종, 영업시간 알려드려야 하잖아요. 한 번 붙이니까 매일 해야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제 손님분들이 기다리시더라고요. 엄청 감사했던 적도 있어요. 미국 사시는 분인데 매일 글 기다린다, 동네에서 보면 더 반가울 것 같다고 말해주셨어요. 들으니 더 열심히 해야할 것 같으니 아침마다 또 고민거리가 생겼죠. 하루이틀 쓰면 모르는데 매일 쓰다 보니 쓸 말이 도통 없더라고요. 어제는 추워서 감기 조심하라 했는데 오늘도 춥네(웃음). 뭘 써야 하지. 그래서 뉴스를 많이 챙겨 봐요. 어르신들은 또 글씨가 작다고 뭐라 하시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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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추출 레시피와 그렇게 설계한 이유가 궁금해요
원두는 20g, 푸어는 300g, 즉 1대 15 비율입니다. 드리퍼는 하리오 V60 유리를 이용해요. 세라믹이나 메탈은 열 손실이 많아서 선호하지 않아요. 플라스틱을 제일 좋아하지만 매장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 유리를 선택했습니다. V60는 물빠짐이 빠른 만큼 분쇄도를 곱게 가져갈 수 있어요. 수온은 96도부터 시작해요. 초반 두 번의 푸어에서 맛 성분을, 후반 푸어에서 농도를 맞추는 개념입니다. 이 레시피를 기준으로 조금씩 변수를 조절해요. 게이샤 같은 경우는 1대 18까지 사용해요. 도안에서 쓴 아이스 커피 관련 글에 엄청 공감했던 건데, 아이스 커피를 내리기 위해 접촉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 있잖아요. 그런데 매장 환경에서는 6분 7분 걸리면 안 되거든요. 늦게 나온다고 클레임 들어옵니다.(웃음) 커피를 후반부까지 뽑아내기 위해 도징량을 줄입니다. 푸어로 인한 운동량은 그대로인데 커피가 줄어드니 후반부의 플로럴이나 시트러스까지 쭉 뽑아낼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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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빼고 다 있는 EK43
준비물
EK43(평범한 가정용 그라인더)
하리오 V60 유리
분쇄도 곱게
뜨거운 커피 EK43 10
차가운 커피 EK43 9.9
물붓기
뜨거운 커피 1:15
수온 96도
1) 00:00 - 60g 굵은 물줄기
2) 00:30 - 130g 굵은 물줄기
3) 01:00 - 210g 표면에 잔잔히
4) 01:30 - 300g 표면에 잔잔히
5) 03:00 내외로 추출 종료
차가운 커피 1:10
첨수 80g(얼음으로)
수온 96도
1) 00:00 - 50g
2) 00:40 - 100g
3) 01:20 - 150g
4) 02:00 - 200g
5) 03:00 내외로 추출 종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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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높은 수온, 고운 분쇄로 맛을 잡는다.
따뜻한 커피
초반부 굵은 푸어로 원두 입자를 최대한 휘저어 골고루 적시고 가스를 원활히 배출시켜, 맛성분 추출 및 미분 배열
후반부 추출은 표면을 적시듯 잔잔히 하여 커피 향미가 미리 만들어진 물길따라 잘 내려오도록 하여 농도 조절
아이스 커피
원두와 접촉시간을 늘려 최대한 많은 향미 추출에 집중
고농도 조준 시 추출 후반부 단맛 놓치거나 잡미 추출되므로 유의
원액에 바로 얼음을 부어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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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로 조금 넘어가볼까요. 대표님의 ‘인생 커피’도 궁금해요
프라우드메리에서 ‘Aunty Pegs’라는 매장을 운영하는데 우유 메뉴가 없어요. 필터 아니면 에스프레소뿐이에요. 커피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 그 매장에 갔어요. 메뉴를 보는데 커피 한 잔 가격이 20호주달러라는 거에요. 한국 돈으로는 2만원이죠. 그런데 커피에서 얼그레이, 베르가못 맛이 난다고 써있는 거예요. 정말 이런 맛이 날까 싶어서 주문했는데 정말 충격이 컸어요. 호주 오기 전에는 커피 맛보다는 로스팅된 향이 좋았거든요. 그걸 아예 뒤집었던 게 그 커피였어요. 에스메랄다였거든요.
커퍼시티에서 추구하는 커피는 뭘까요
커피를 농작물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스페셜티라는 이름이 사실 생두 등급을 이야기할 때 쓰던 단어잖아요. 말 그대로 원물 등급이 높으면 로스팅했을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오죠. 그걸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게 워시드라고 생각해요. 그 훌륭한 농작물 그 자체를 보여드리는 게 목표라 그런 커피를 주로 선택해요. 꼭 라이트 로스팅이 아니어도 좋으니 단점을 잘 가리고 장점을 잘 살리는 로스터리 위주로 골라요. 지난 번 발주했던 오닉스의 인자 다리오가 그랬어요. 치로소의 느낌은 잘 살리고 카투라의 매운 맛은 줄이며 당도를 끌어 올려뒀거든요. 그런 콩들은 입소문 타면 일주일이면 끝나죠. 추출 방향도 그렇게 잡아요. 요새 바리스타 분들은 커피를 마시자마자 임팩트 있는 방향으로 추출을 추구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로스터들은 라이트 로스팅으로 흐름이 넘어가고 있잖아요. 추출은 아직도 예전에 머물러 있는 게 제겐 아이러니였어요. 처음엔 커피가 잔잔해도 끝까지 맛이 남아있는 커피를 내놓고 싶어요. 얼음이 녹아도 괜찮고, 식어도 괜찮은 커피요. 종합하면 작물 자체가 우수한 커피, 장점을 잘 살린 로스팅, 마지막으로 제가 추출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많은 커피를 추구합니다. 최근 가공 트렌드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제가 농부 집안이었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또 가공으로 맛을 살린 커피는 근처 카페들이 많이 취급하시고 더 잘 볶으시니까 다른 선택지를 주고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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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갖고 계시는 커피 라인업 중에서 그런 커피가 있다면요 더 반에서 다이렉트 트레이드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라디오페어Radiophare라는 커피가 있어요. 로부스타가 섞여 있는데도 이 커피를 가져오는 이유는 편견을 깨고 싶어서에요. 많은 분들이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커피 하면 복합성은 없고 흔히들 연필 맛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어떤 식재료든 정점에 올라가면 맛있어요. 이 커피가 저한테는 그런 표본이에요. 노트에 적혀 있는 패션후르츠나 시나몬 케인 슈가가 아주 선명히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건포도, 스피아민트, 박하사탕, 리치 같은 맛이 좋아요. 에티오피아나 케냐 같은 커피 생산국 커피보다 훨씬 비싸기도 해요. 원두로 250g에 36,000원이에요. 커피는 농작물이잖아요. 공을 정성스럽게 들이면 결과가 항상 좋다라는 걸 보여드리는 게 제 일 같아요. 실제로 지난 봄에 가장 많이 팔았어요.
지금은 없지만 예전 나무사이로의 ‘버니’블랜드도 기억에 남죠. 에티오피아 허니/워시드 섞은 블랜드였는데, 허니가 다 떨어지면 그와 흡사한 콩으로 계속 충당해 블랜드를 유지해나가는 식이었어요. 이 방식이 카운터컬쳐나 오나에서 흔히 하는 방식이잖아요. 그게 좋아서 버니를 계속 썼는데 당시에는 센터커피와 나무사이로 두 개가 걸려 있었어요. 그런데 나무사이로를 보고는 ‘여긴 뭐 하는 브랜드에요?’ 하고 묻고는 결국 센터를 고르시더라고요. 브랜드 네임에 휘둘리는 거죠. 사실은 이렇다, 세상에 좋은 콩 많다, 이런 것도 마셔봐라. 유명한 것만이 좋은 게 아니다. 같은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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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년이 됐습니다. 시작하면서 그렸던 이미지와 지금의 매장은 비슷한가요
방향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그린 그림은 손님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오는 카페였거든요. 여름에 드디어 단골분들이 그렇게 오시더라고요. 길 가다가 인사만 하러 들려주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오히려 연남동 가시듯 예쁘게 차려 입고 오셨던 분들이 당황해서 나가세요. 분위기가 너무 편안해서요. 개들은 자고 있고 손님들은 슬리퍼 차림인데 사장이랑 웃으며 커피 마시고 있으니까요.
2년간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여러 순간이 있는데 그래도 영업 첫날 아닐까요. 저희가 가오픈 전에 문을 열어놓고 저희끼리 커피를 내리고 있었는데 손님분들이 오셔서 커피를 드렸거든요. 드시고는 내일 몇 시에 오픈이냐고, 10시라 대답하니 아침에 오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말 10시에 오셨었어요. 그런 순간들이죠. 우리가 정말 열었구나. 저희 매장을 찾아와야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도요. 당시 롱블랙이 5천원이었어요. 비싸잖아요. 그래도 그냥 오셔서 드셔주셨던 기억들이요.
최근 매장에서 해보고 싶은 건 어떤 걸까요 커핑을 일단 제일 우선으로 두고 있어요. 좋은 테마를 정해서 하고 싶어서 정기적으로는 못 하고 있고요. 그 외에는 플리마켓 해보고 싶어요. 동네 분들도 좋고요. 코로나 기간 때 분명 많이 소비하셔서 집에 물건이 많을 거예요. 일요일에 오늘처럼 날씨 좋을 때 물건은 안에서 팔고 밖에서는 손님들과 커피 마시면 좋지 않을까요. 실제로 몇몇 셀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중장기적 계획도 있을 것 같습니다 커피를 제외한 나머지 기물들을 다 저희 걸로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지금 컵들도 유명한 디자이너 제품이 아니다 보니 단종되거든요. 오리지널 제품은 꾸준히 제작할 수 있잖아요. 최종 목표는 사실 잡화점 사장인데, 커피가 있는 잡화점이거든요. 뭐든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으면 좋겠어요. 허브, 그릇, 옷, 학용품 다 좋아요. 지금 제 친구가 브랜드를 만들어서 무지 티를 팔고 있거든요. 스마트스토어에 굿즈로 만든 옷도 있어요. 앞으로 제품군 꾸준히 만들 텐데 1호는 다 저희 굿즈로 만들 거예요. 그런데 커피도 맛있어야 해요. 제가 어딜 가면 항상 아쉬웠던 게 재밌게 놀았는데 커피가 맛이 없는 거였어요. 좋았던 기분을 마지막 커피 하나로 망치게 되는 게 싫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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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꿈꾸는 구조를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대표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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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아주시는, 찾아주실 고객님들한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찾아주셨던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새로 오시는 분들, 비록 저희가 대단한 메뉴나 시그니처 메뉴는 없지만 커피 한 잔하고 가실 때, 적어도 맛있게 먹고 잘 쉬다 간다라는 느낌 저희가 받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동네 오셔서 그런 곳 필요하시면 한 번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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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퍼시티
영업시간
- 월화 11:00 ~ 18:00
- 목금토일 08:00 ~ 18:00
- 수요일 정기휴무
주소 서울 마포구 동교로 48 1층
전화번호 0507-1371-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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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디터의 외근일지' 두번째 편은 어떠셨나요? 독자 여러분의 가감없는 피드백이 에디터를 향한 최고의 응원입니다. 저 이재동은 무플보다 악플이 좋습니다! 물론 악플보단 선플이 좋지만요.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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